소위 "셀프-예술가" by yjhahm

모 일간지에서 "셀프-예술가"라는 기획을 진행 중인데, 그 설문지를 저도 받아보게 되었습니다. 주류 언론에서 주류가 아닌 것을 어떻게 바라 보고 있는지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설문 문항에서 이미 정해 버린 범주로 인해 차마 보기 중에 하나를 골라 '보내기' 버튼을 누를 수는 없었습니다. 설문을 받기 전 한 통화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므로, 저는 질문과 보기의 항목을 뭉뚱그려 글을 써 보냈습니다. 그러나 실리진 않았을거라고 합니다. 해서 여기에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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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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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OO일보 문화부에서는 문화예술계 신조류로 떠오른 ‘셀프 예술가’에 대한 기획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기사는 다음 주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셀프 예술가 : 주류 시스템에 기대는 대신 스스로가 제작과 유통을 담당하는 DIY형 예술가. 인디음악과 독립영화, 소규모 자주출판(단행본, 잡지 등) 등에 종사하는 예술가들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음.

* 기본 정보
- 연령 : 만 _____ 세 - 성별 : (남, 여) - 학력 :
- 종사하는 예술 분야 :
① 인디음악 ② 독립영화 ③ 소규모 자주출판(단행본, 잡지 등) ④ 1인 공연
⑤ 1인 전시 ⑥ 기타(주관식)

* 질의 내용
1. 왜 셀프 예술가가 된 것인가.(복수 응답 가능)
① 아무런 제한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예술을 하기 위해.
② 나의 창작물을 통해 타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③ 기술의 발달로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으니까.
④ 예술계 주류 시스템에 진입하기 힘드니까.
⑤ 기타(주관식)

2. 주류 시장에 진입하고 싶은가.
① 예 ② 아니오.

2-1. (2번 질문에서 ‘① 예’라고 답한 사람을 대상으로) 주류 시장에 진입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①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서.
② 자본력을 바탕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③ 인적 자원을 활용해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④ 돈을 벌기 위해서.
⑤ 기타(주관식)

2-2. (2번 질문에서 ‘② 아니오’라고 답한 사람을 대상으로) 주류 시장에 진입하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① 아무런 제한 없이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으니까.
② 주류 시장에 들어가면 ‘일’이 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서.
③ 대중보다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소수의 마니아 팬과 소통하고 싶으니까.
④ 기타(주관식)

3. 주로 어떻게 제작하는가.
① 혼자서 한다.
② 소수 인력이 각자의 분야를 맡아서 한다.
③ 프로젝트 식으로 필요에 따라 인원을 모아 진행한다.
④ 기타(주관식)

4. 주로 어떻게 자신의 창작물을 유통하는가.
① 독립서점, 인디레이블 등의 인디 마켓을 통해.
② 온라인 마켓을 통해.
③ 재단(정부, 지자체, 기업 등)이나 문화단체 등이 후원하는 행사를 통해.
④ 셀프 예술가와 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커뮤니티를 통해.
⑤ 기타(주관식)

5. 보통 제작비는 얼마나 드는가. 여기서 제작비는 인건비 제외. 영화의 경우 1편, 인디음악의 경우 음반 1장, 자주출판의 경우 책 1권, 1인 공연의 경우 공연 1편을 기준으로.(주관식)

6. 제작비는 어떻게 충당하는가.(복수 응답 가능)
① 자비
② 지인 후원
③ 재단(국가, 지자체, 기업 등) 후원
④ 소셜 펀딩(텀블벅 등)
⑤ 기타(주관식)

7. 예술 활동으로 수익을 내는가.
① 예. ② 아니오.

7-1.(7번 질문에서 ‘① 예’라고 답한 사람을 대상으로) 수익을 낸다면 어느 정도인가? 여기서 수익은 한 프로젝트를 성사한 후 내는 수익을 말함.(주관식)

8. 예술 활동 외에 다른 일을 하는가.
① 예. ② 아니오.

8-1.(8번 질문에서 ‘① 예’라고 답한 사람을 대상으로) 왜 다른 일을 하는가.(주관식)

8-2.(8번 질문에서 ‘① 예’라고 답한 사람을 대상으로) 어떤 일을 하는가.
① 정규직
② 비정규직
③ 일용직
④ 아르바이트
⑤ 기타(주관식)

9. 셀프 예술가로 데뷔한 시기는?
① 10대 후반
② 20대 초반
③ 20대 중후반
④ 30대 초반
⑤ 기타(주관식)

10. 셀프 예술가로서의 삶에 만족하나.
① 매우 만족
② 대체로 만족
③ 보통
④ 대체로 후회
⑤ 매우 후회

10-1. (10번 문항에서 ‘①매우 만족’과 ‘②대체로 만족’을 택한 사람을 대상으로) 언제 가장 만족스럽고 보람을 느끼나?(주관식)

11. 당신의 예술 활동을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주관식)

12. 앞으로 예술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하는가.(주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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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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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에 진입하고 싶은가?)

나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나는 유명 작가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작품 판매에 관여한다. 또한 쪽글을 써서 '주류' 매체에 기고하는 일도 하고 있다. 그 일 역시 문화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 일은 자연스럽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다른 '셀프 예술가'와는 조금 다른 길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셀프 예술가'중에는 문화계와 전혀 무관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마련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들의 직업에 얼마만큼의 의미를 두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동등한 가치를 둔다. 즉, 그 노력은 각 영역에서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순위는 상황에 따라 가장 중요한 일에 둔다. 그 중요성은 나의 기준이다. 빨리 해치워야 하는 일이 있고, 느긋하게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일이 있다. 

나는 일단 주류 예술계와 그렇지 않은 예술계가 어떻게 구분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주류 시스템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주류 시스템은 내가 경험해 본 결과, 별 다를 것이 없다. 특히 지금 이 시점의 한국에서라면 주류건 아니건 종이 한 장 차이다. 곡을 잘 쓰는, 즉 대중에게 인기가 있을 법한 곡을 잘 쓰는 작곡가는 당연히 주류로 편입된다. 매거진킹이라는 뮤지션은 아방가르드한 힙합과 실험음악을 하던 사람인데, 결국 박진영의 파트너가 되었다. 그러니까, 예술계는 주류와 비주류가 서로 상보적으로 공생하는 곳이지 주류에 편입되기 위해 비주류의 시간을 거치는 곳이 아니다. 미술계에서 '주류'라면 이미 명성을 얻은 미술가들의 그림을 서로 거래하기 위해 애쓰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명성'이라는 것이 온전히 작품의 가치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가장 잘 팔리는 그림은 가장 걸어놓기 좋은 그림이다. 그렇다면 판매가 애매한 퍼포먼스나 설치작업을 비주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비주류'는 그 명성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출세를 꿈꾸며 잠행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 명성에 별로 관심이 없거나 명성을 얻는 방법이나 당대의 유행과 다른 지점에 서 있는 자들이 모여서 꾸준히 무언가를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심지어 출판계는 주류와 비주류에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 인문 사회 서적의 대부분이 초판 1500부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현 실태를 생각해보면, 어느 곳이 주류 출판계이고 어느 곳이 비주류 출판계인지 나누는 일은 불필요하다.

그렇다면 나는 주류에 진입하고 싶을까? 그것은 내가 만드는 것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서 어떤 것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고, 어떤 것은 보여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공개하고 싶다. 그러나 여기에 선행하는 기준이 하나 있다. 나는 내가 만드는 것이 도대체 몇 명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미리 예측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손실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주류 영화 시장에서 관객이 많이 들지 않을 영화에는 상영관을 적게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그 판단의 경제적인 여파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만, 주류의 논리와 흡사한 예측의 과정을 나도 거친다. 현재의 한국 실정에서 그 예상치의 기준은 1000명이다. 1000명이 넘어가면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을 통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단지 200명 정도를 대상으로 한다면 현재의 '독립적' 유통방식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니까 여건이 허락한다고 해도 '독립적' 유통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정도의 유연성은 소망하는 바이기도 하나 여건이 허락치 않더라도 상관은 없다.


(유통방식)

'독립적' 유통 방식이라는 것은 숫자가 워낙 미미해서 그렇지 점점 갖추어지고 있다. 일단 '더 북소사이어티'나 '유어-마인드' 등의 서점이 존재한다. 그들은 일반 대형 서점에서 유통되지 않을, 즉 마진이 적고 판매부수도 많지 않을 책을 구비해 놓는다. 그런 유통망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좋은 동료다. 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름의 느슨한 연대의식을 느낀다. 내가 소규모 출판물을 만들면 그들은 나의 출판물을 반기며 입고를 요청한다. 그리고 적당한 요율을 정해 책을 입고한다. 그것이 현재 한국에서 '독립출판'이라고 불리는 것, 즉 소량의 책을 파는 방법이다. 그러한 서점은 알려진 것보다 더 많다. 전국을 따지면 10군데에 육박할 것이다. 그리고 직접 온라인 판매를 하기도 한다. 블로그나 트위터를 통해 주문을 받고 독자가 입금을 하면 책을 보내주는 방식이다. 재단이 후원하는 행사는 사실 많지 않고, 있더라도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용해 본 적은 없다. 정부의 문화지원사업이 가끔 유통망의 구축을 위해 힘쓰는 것을 보는데, 솔직히 그다지 쓸모가 없다. 유통은 문제가 안된다. 생산이 문제지.


(제작비)

기술의 발달로 제작비가 적게 든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들이기에는 부담되는 금액이다. 그러나 더 큰 고민거리는 액수와 무관하게 사비를 지출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것이다. 사비를 지출해서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이 지칭하는 영역이나 결과물 자체의 퀄리티에 대해 무신경해질 수 있는 맹점이 있다.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외부에서 지원을 얻거나 광고를 싣는 것은 제한이 발생할 수 있다. 그 제한은 콘텐츠 자체의 내용이나 질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작업을 진행하는 실질적인 스케줄과도 결부된다. 예를 들어, 변화하는 서울의 순간을 포착하고 싶은 작업이라면 무엇보다 시의성이 중요하다. 그런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제작비를 오로지 펀딩에 의존할 수는 없다. 기동성있고 간편하여 작업에 좀 더 쉽게 집중할 수 있다. 만일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면, 제작비 마련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을 줄이고 작업 자체의 퀄리티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인쇄나 시디 제작 등 실제로 제작하는 데 있어서 드는 돈은 주류업계와 다르지 않다. '독립'이라고 하여 더 싸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량을 만들기 때문에 비싸질 수도 있으며, 인쇄소 사장님의 재량에 따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기도 하다. 사진은 보통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사용한다. 그런 경우는 좀 더 '주류'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고, 당연히 저작권에 대한 분쟁을 미리 막고자 하는 것이다. '독립' 출판이라고 해서 사용료가 더 싸지는 않다. 그런데 어떤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그 행위 조차 작품의 내용에 포함될 때도 있다. 내용에 따라 항상 선택한다. 원고료는 일반적인 업계의 수준에 맞춰서 지불한다. 주류 매체보다 많이 지불하는 편이다. 입금도 정확한 날짜에 하려고 노력한다.

사비를 털어넣어 제작했더라도 어떤 것은 무료로 배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는 독자들에게 좀 더 가볍게 읽히고 더 많이 내용을 알리고 싶을 때 고려할 수 있는 정책이다. 그러나 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았더라도 결과물에 대해 독자와 적당한 턱을 두고 싶다면 조금은 비싸게 가격을 책정하기도 한다. 즉, 가격은 주류 시장의 논리보다 훨씬 느슨하게 책정된다. 책의 가격을 정하는 것 역시 콘텐츠에 따라 달라진다.


(수익)

돈을 벌고자 했으면 애시당초 이런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예술계에 진입하는 일은 바보짓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법대나 의대에 진학하는 것이 안전하고 빠르다. 그렇다고 돈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사비를 들인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본전'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지원을 받은 경우에는 좀 더 자유롭다. 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출판을 하지 않는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좀 더 열심히 해야만 더 의미있는 것이 나온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생계를 유지하려고 이런 일을 벌이는 사람들도 많이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만족)

만족을 느낄 때는 내가 만든 것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볼 때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단순한 칭찬이든, 비판이든 상관없다. 칭찬만 듣기 위해서는 이런 일을 하면 안된다. 그러나 가장 큰 만족은 '동료'를 알게 될 때 온다. 내가 만든 것에 대해, 우리가 만든 것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보여주고 싶은 것)

내가 책을 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사람들이 별로 관심두지 않는 부분을 정리해서 보여주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는 소위 말해 '주류'에서 다뤄주지 않기 때문인데, 그것이 내가 관심을 두는 분야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나는 시의성에 주목한다. 지금 시기에 반드시 필요한 어떤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거창한 목표를 두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서울의 한 켠에 존재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것에 대해 정리하고 있을 뿐이다.

두번째는 세대다. 70년대말에 테어난 나는 위로는 소위 '오렌지족'과 홍대앞 1세대로 대표되는 세대의 문화충격을 뒤에서 따랐다. 그리고 나의 아래 세대는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에 세례를 받고 초등학교 때부터 게임방에 다니며 포탈에 댓글을 달던 세대다. 나의 세대는 군대를 다녀오고 학교를 마친 뒤 IMF의 평지풍파를 겪고 기업체에 취업해서 '주류'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결혼을 하고 대출금을 갚으며 월급을 받아서 생활한다. 나는 이 끼인 세대에 대해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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